
© Sampajano
※ 이 글은 런던에 오래 머무르며 겪은 개인적 관찰과 문화 비교에 바탕을 둔 기록입니다. 영국 사회는 지역·계층·세대에 따라 차이가 크며, 여기 적힌 내용이 모든 영국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마주치는 작은 당혹감
영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쌓일수록 더 또렷해지는 낯섦도 있다. 내게 그중 하나가 식사였다. 정확히는 음식의 맛이 아니라, 식사가 이곳에서 차지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 식사는 하루를 나누는 기준점에 가까웠다. 누구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가 하루의 기억을 만들었다. 밥상은 그 자체로 관계의 장치였고, 국과 반찬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식사가 그런 역할을 꼭 맡지 않는 듯 보인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시간이 되면 정리한다. 식사는 하루의 흐름 속에 잠깐 끼어들었다가 조용히 빠져나간다. 점심시간엔 책상 앞에서 샌드위치를 펼쳐 놓는 동료들이 있고, 저녁에는 “오늘은 그냥 간단히”라며 오븐에 무언가를 넣는 풍경이 흔하다. 가끔은 그것이 차갑게 느껴지고, 가끔은 이상하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단순히 개인주의나 실용성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의문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자랐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생활 리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식사가 길어지지 않는 나라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은 ‘짧음’이다. 점심시간이 짧고, 식사의 형태가 간단하며, 식사에 붙는 의례가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영국에도 긴 식사가 있다. 가족 모임도 있고, 친구들과의 저녁도 있고, 특별한 날의 만찬도 있다. 다만 ‘평일의 평균’으로 내려가 보면, 식사는 종종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로 정리된다.
이때 식사는 사교의 중심이 아니라,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부품처럼 보인다. 밥이 관계를 이어주는 실이기보다는, 하루를 굴리는 기름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식탁을 중심으로 하루가 재편되는 장면은 한국보다 덜 자주 보인다.
이 차이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드러난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라는 질문이 한국에서는 대화의 문을 여는 인사처럼 쓰이는데, 영국에서는 그 질문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것들, 굳이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조금 더 넓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멈추지 않는 의문 하나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나 혼자만의 질문이 아닌 듯했다. 한국에서 온 지인들, 중국인 친구들, 일본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비슷한 지점에 닿곤 했다.
“여긴 왜 이렇게 먹을게 없고, 간단히 먹지?” “식사다운 식사, 정상적인 식사를 하려면 왜 이렇게 비싸지?” “선택지는 왜 생각보다 좁지?”
그리고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도 하나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면 “정말 잘 먹었다”는 감각이 온몸으로 남는다는 것. 단지 익숙한 맛 때문만은 아니다. 식재료의 종류, 국물과 반찬의 층, 손이 닿은 흔적이 생활의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영국 친구들이 한국이나 일본, 태국 등을 다녀오고는 “천국 같았다”고 말하는 것도 종종 들었다. 값이 싸서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돈으로 얻는 ‘식사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 £15를 내고 받는 한 끼와, 저기서 훨씬 적은 돈으로 마주치는 한 상의 차이가, 단순한 환율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내 질문은 조금 과감해진다. 다만 질문으로만 남겨 두려 한다.
“한때 제국을 꾸렸던 나라의 평범한 식탁이, 왜 이렇게 조용할까?” “섬나라라면 바다가 더 가까울 텐데, 해산물은 왜 일상으로 들어오지 못했을까?”
의문은 종종 여기까지 미끄러진다. 이 나라가 가진 에너지와 관심은, 식탁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흘러간 것은 아닐까.
결론 대신, 다음 편으로 넘기는 메모
여기서 성급하게 답을 내리면 글이 금방 단정으로 굳어버릴 것 같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영국에서 식사는 “가볍다”기보다 “가볍게 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선택은 무심함이라기보다, 생활이 돌아가는 방식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다음 편에서는 이 조용한 식탁이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 배경에 무엇이 쌓여 있었는지—산업화, 노동, 시간의 가치 같은 것들이 어떤 방향으로 생활을 밀어왔는지—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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