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영국식 예의, 한국식 예의 — 따뜻하지 않지만 무례하지도 않은

© Sampajano


※ 이 글은 런던에 오래 머무르며 겪은 개인적 관찰과 문화 비교에 바탕을 둔 기록입니다. 영국 사회는 지역·계층·세대에 따라 차이가 크며, 여기 적힌 내용이 모든 영국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의라는 말의 출발점

한국에서 자라며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장면이 있었다. 말이 부드럽고, 표정이 살갑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 적어도 내게 예의는 늘 감정의 온도와 가까운 말처럼 느껴졌다.

영국에 와서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 온도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예의는 친절과 겹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다. 감정을 얼마나 드러내느냐보다,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해 보였다. 규칙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타인의 영역을 넘지 않는 태도. 그런 것들이 예의의 기준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이곳의 예의는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이라기보다, 감정을 관리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일상에서 마주친 ‘폴라이트함’

영국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는 일만큼은 유난히 철저하다. 이건 꽤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것은 ‘효율적이다’거나 ‘시간을 잘 지킨다’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결이었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종종 그런 장면을 본다. 계산대 직원과 손님이 날씨 이야기나 주말 계획 같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자기 차례가 되어서야 느긋하게 지갑을 꺼낸다. 한국이었다면 뒤에서 누군가 작게 혀를 찼을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기다리던 사람들 역시 그 시간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불편함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친절한 표정을 짓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담담하게 기다린다.

처음엔 이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시간은 지연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는 걸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예의란, 빠르게 처리하는 것보다 서로의 템포를 건드리지 않는 것, 불편함을 표출해 상대에게 압박을 주지 않는 것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

말투는 정중하지만 표정은 담담하다. 상대의 말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공감의 몸짓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관심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태도 자체가 예의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그 차가움이 무례함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음으로써 관계가 오히려 안전하게 유지되고, “선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뢰로 작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 인상은 내가 주로 만난 사람들, 내가 생활한 지역에서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영국도 넓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은 언제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 낯설었을까

한국에서 자란 내게 이런 태도는 처음엔 형식적으로 보였다. 정이 없고, 거리감이 크며,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예의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서 상대를 향한 마음이 읽혀야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생활하며 종종 느꼈던 묘한 불편함이 있었다.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가족이나 친구, 지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잘하면서도, 나와 무관한 사람에게는 상식 이하의 태도를 보이는 장면들이다.

자기 사람에게 잘하는 건, 인류 역사 어디에서나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것은 또 다른 단계의 질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영국에서 내가 느낀 예의는 바로 그 ‘무관한 타인’을 향한 예의에 가까웠다. 친밀함이 전제되지 않아도 작동하는 예의. 관계와 상관없이 지켜지는 경계.

이곳에서는 친절과 예의가 분리되어 있는 듯 보였다. 친절은 상황에 따라 드러나지만, 예의는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유지된다. 감정을 아끼고, 규칙을 존중하며, 상대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것. 이런 태도들이 배려로 해석되는 방식이었다.

낯설음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라기보다, 무엇을 예의의 기준으로 삼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 Sampajano

경계 위에 놓인 예의

내가 영국에서 느낀 ‘예의 바르다’는 말은 관계를 좁히는 표현이라기보다, 관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표현에 가까웠다. 다가가지 않음으로써 존중을 보여주는 방식.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신뢰를 쌓는 방식이다.

이 예의는 내가 한국에서 느꼈던 따뜻함과는 다른 결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차가움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 차이를 조금씩 알아차리며,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예의라는 건 어디에서나 중요하지만, 그 모습은 늘 같을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름을 천천히 이해해 가는 과정이,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재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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